뭐시 중한디?: 정권교체나 재창출보다 더 중요한 것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청소년 참정권 확대’...한국정치의 희망적 신호 혼탁한 대선정국, 민주공화국다운 정치개혁에 집중해야 뭐시 중한디?...정치적 결정에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참정권 확대와 피선거권 나이제한 폐지 요구를 담은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이 연말연시 국회를 통과했다. 사진=연합뉴스
청소년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참정권 확대와 피선거권 나이제한 폐지 요구를 담은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이 연말연시 국회를 통과했다. 사진=연합뉴스

“뭐시 중한디?” 몇 년 전 나홍진 감독의 화제작 ‘곡성’에서 영혼을 귀신에 빼앗긴 딸이 추궁하는 아빠에게 내뱉아서 유명해진 대사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둘러싼 이분법적 담론이 여전히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표류하는 가치기준의 모순을 직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도대체 뭐시 중한디? 이 질문은 민주화 이후 최악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선정국에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민주화 제8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번 대선은 누가 더 비호감인지, 네가티브로 얼룩진 혐오 대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과 비전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누가 범죄자인가를 두고 수사기관을 질타하는 ‘수사 대선’의 늪에 빠져있다. 주권자 국민은 정권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 라는 단답형 여론조사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일차원적 객관식 대선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 혁명적 보통선거 시대의 개막선언

그나마 저급한 이전투구의 와중에도 “뭐시 중한디?”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의 실마리들이 없지는 않아 한국 정치의 희망을 본다. 지난해의 마지막 날인 31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이 전격 통과되었다. 이로써 청소년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원 피선거권 연령이 현행 25세에서 18세 이상으로 조정되어 피선거권 연령이 선거권 연령과 일치하게 되었다.

1948년 제헌헌법체제의 국회의원선거법 제1조에서 선거권연령을 21세, 피선거권연령을 25세로 정한 이래 가장 혁명적인 보통선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생도 국회의원 등 각종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로써 민주공화국의 국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비(非)국민’이었던 청소년들의 정치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정치개혁이 큰 진전을 이룬 셈이다.

선거를 통해 선발되는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공무담임권의 핵심내용이다. 공무담임권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들이 공무원이 됨으로써 직접 공동체의 공적 사안의 처리에 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기본권이다. 공무를 통해 공적 사안에 관여하는 것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국민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민주공화국은 구성원인 국민 “모두의 것”(res publica)이고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전유물일 수 없으므로 공화국의 공적 사무는 국민이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고 맡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공무를 맡는다는 것은 보수가 특별히 따로 없는 것이 원칙이고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통해 개인의 사적 사안을 해결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등 사익을 추구하는 기회를 기꺼이 희생하는 의미를 가졌다.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는 아테네의 민주체제가 공직배분에 ‘제비뽑기형 추첨제’(sortition or allotment)를 원칙으로 한 것도 이런 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공무담임의 절차로 선호투표형 선거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공무담임의 의무성보다는 권리성이 더욱 강조되는 체제가 되었다. 선거는 경쟁을 통해 다수자가 선호하는 공직담당자를 뽑는 제도이고 누구나 당연히 공직을 맡을 수는 없게 되었다(선거직 외의 공무를 맡는 다른 통로는 전문적 식견과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직업공무원이 되는 길이다). 그 결과 선거직 공직의 경우 그 담당자격이 법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선거직에도 직업공무원과 같이 보수가 지급되는 직업정치인이 중심이 되는 기초적 환경으로 유급보수체계가 도입되었다. 국민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할 공직제도가 이제 자격을 갖춘 누군가만이 가능한 직업체제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요체라고 일컬어지는 선거제도가 원래는 과두정 혹은 귀족정과 같이 신분제적 정치체제에 그 기원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선거가 민주제와 결합한 것은 불과 몇백년 전의 일이다. 18세기 근대시민혁명으로 국민주권주의가 대세가 되지만 그 실현은 여전히 재산과 교양을 기준으로 소수의 사회적 신분에게만 맡겨졌던 제한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이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던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선호투표형 선거제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진행된 민주화는 제한민주제에서 보통민주제로의 투쟁의 역사였다. 우선 19세기에 농민과 노동자인 남성이 참정권을 획득하였다. 다음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확보하게 된다. 보통민주주의의 시대에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법적인 자격제한의 대표적 기준이 연령이다. 연령은 능력과 경험의 주요한 증표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신분의 법적 철폐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피선거권은 선거기부금이나 선거비용부담, 그리고 경제사회적 진입장벽으로 사실상 사회적 신분에 의한 자격제한은 더 강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법적 자격제한의 징표인 연령의 기준적 가치는 그 실증적 근거가 부족해짐에 따라 지속적으로 낮추어져 왔다. 서구의 경우 지속적으로 선거권연령과 피선거권연령이 하향화되어 왔지만 우리는 21세기가 20여년이 흐른 뒤에야 순차적으로 겨우 18세에 도달한 셈이다. 먼저 15세나 16세로 낮추어 가는 서구의 추세를 볼 때 언젠가는 이 연령제한도 더 낮추어지게 될 것이다.

후속정치개혁과 교육개혁의 과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 하향은 정치영역을 비롯해 많은 사회제도개혁을 추동하는 시발점이다.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이어 정당가입 연령을 국회의원 선거권연령인 18세보다 더 낮추어 16세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도 어제(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실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정당원이 될 수 있는 체제로 전환된 것이다. 정치가 선거라는 매우 제한적 계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개혁의 방향이다. 그런데 이런 개혁은 당연히 교육제도의 개혁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선거권연령·피선거권연령·정당가입연령의 하향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분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칙을 교육에서의 정치 금지 원칙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게 되면 교육현장마저 정치판처럼 혼탁해지고 청소년들이 미래를 위한 준비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지 못한다는게 그 핵심논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시대착오적 후견주의적 발상이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신봉한다는 소위 한국의 보수진영에 지배적인 교육관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스스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대한 자율성을 체화하는 것임을 부정하고 정치는 오로지 정당이나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일부 국민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반민주공화적 편향성은 교육의 담당자인 국민, 즉 교원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적 참여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정당법과 선거법 및 공무원법제로 유지되고 있다. 민주공화국을 책임져야한 청소년들에게 정치관련 교육을 금지하고 가장 좋은 시민의 조건을 갖춘 전문직업인인 교원들을 정치과정에서 배제한 결과가 과도하게 이념편향적인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선거와 정치판이다. 아무런 알맹이없는 정권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는 객관식 대선이 민주화이후 여덟 번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핵심프레임이 된 것에도 정치적 자질을 함양하는 정치교육, 헌법교육, 시민교육을 교육체제에서 거세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뭐시 중한디? 정권장악이냐 vs 민주공화국다운 정치개혁이냐

최근의 국회발 정치개혁은 한국의 민주공화체제가 한 걸음씩 더 내딛고 있다는 중요한 사례를 하나 더 보탠 의미를 가진다. 민주공화국의 기본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이제는 빛 좋은 개살구마냥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는 거위가 낳아줄 잿밥에만 관심 있는 일부 언론이나 정치세력의 난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결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만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헬 조선’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최근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향한 정치개혁의 진전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 주권자 국민들은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뭐시 중한가? 정권교체나 정권재창출의 단선적 구호인가, 아니면 민주공화국을 민주공화국답게 만드는 끊임없는 정치개혁인가.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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